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 정치학 (문단 편집) === 성 혁명은 어떻게 나타나서 어떻게 실패했는가 === 저자는 성 혁명(sexual revolution)에 대해서 가부장적 [[일부일처제]]에 관련된 전통적 성적 금기들을 종식시키는 혁명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동성애]] 금지, 혼외정사 및 출산 금지, 청소년 성관계 금지, 혼전[[순결]] 옹호, [[성매매]] 금지, [[이혼]] 금지, [[낙태]] 금지 등등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성적인 규범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저자가 생각하는 성 혁명이란 바로 이들 규범들을 없애는 것이다. 이를 공격하려는 움직임은 저자가 처음은 아니어서, 이미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1830년~1900년)에 그 논의가 시작되어, 이후로 1870년~1930년 사이에 크게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30년 동안, 저자가 "반혁명기"[* 저자 외에도 파이어스톤, 팔루디 등등이 이 시기의 페미니즘 운동 동향을 돌아보면서 "암울한 시기" 였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라고 이름붙인 시대 속에서 여성들은 가부장적 질서가 다시 견고해지는 것을 목도해야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여튼 저자는 이렇게 전후 시기구분을 시도함으로써, 오늘날 '''여성 [[참정권]] 운동'''([[서프러제트]]), 혹은 '''페미니즘의 제1물결'''이라고 불리는 흐름을 '''성 혁명의 제1기'''로 부르고 있다. 참정권 운동은, 저자에 따르면, [[계몽주의]]가 제공했던 [[회의주의]]와 [[합리주의]], [[프랑스 대혁명]]이 제공했던 '통치 받는 자들의 동의를 통한 정부' 와 '양도할 수 없는 [[인권]]' 개념으로부터 시작했다. 그 본격적 시초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Wollstonecraft)의 《여성의 권리 옹호》 로서, 이는 여성의 온전한 인간성을 인식하는 최초의 문헌이다. 이 시기 미국은 [[위선]]과 가식의 시대라고 오늘날 평가되곤 하는 '''[[빅토리아 시대]]'''였는데, 이 시기의 경향을 요약하자면 한편으로는 '''귀부인을 위한 [[기사도]]를 낭만적으로 노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혼전연애 때문에 집에서 내쫓긴 여성들이 강에 몸을 던지거나 매춘굴을 만들어 연명'''하는 기이한 [[금욕주의]]의 시대였다. 이때의 도덕관은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하고, 남성은 여성을 지켜주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으로,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을 위한 수동적 삶을 살아가야 했으며, 여성교육은 기초적인 인문학 지식과 예술적 소양만 허용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고등교육이 여성의 덕목을 해칠 것이라며 거부했는데, 특히 [[장 자크 루소]]는 《[[에밀]]》 에서 여성교육의 목적은 남성에게 복종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성 혁명의 시기에 이르러서야 최초의 [[여자대학교]]인 [[마운트 홀리요크 칼리지]]가 세워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여성들은 [[노예제]] 폐지에 공감하면서도 자신들의 참여를 가로막는 남성들로 인해, 처음으로 자신들이 직접 정치세력을 꾸리면서 조직화, 공공집회, 캠페이닝, 청원 등을 경험하게 되었다. 즉, 밀렛에 따르면, '''성 혁명의 첫 불씨는 [[인종차별]] 문제의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페미니즘의 제2물결이 다시금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면서 나타났다는 점과의 공통점으로 엮이기도 한다. 그러나 파이어스톤은 자신의 문헌에서 "그럼에도 여성운동은 자체적인 동력을 갖고 있다" 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루시 스톤(L.Stone), 엘리자베스 스탠튼(E.C.Stanton), 수전 앤서니(S.B.Anthony), [[프레더릭 더글러스]](F.Douglass), 헨리 블랙웰(H.Blackwell) 등이 대표적이었으며, 특히 이 중에서 더글러스와 블랙웰은 [[남성 페미니스트|남성으로서 여권운동에 참여했다.]] 괄목할 만한 성과로는, 1848년 6월 19-20일에 있었던 '''세네카 폴스 집회'''에서 [[퀘이커]] 교도와 힘을 합친 여성운동은 '''〈여성의 소신 선언〉'''(Statement of Sentiments)을 발표했고, [[존 스튜어트 밀]](J.S.Mill)은 《[[여성의 종속]]》 을 출간했으며, 수전 앤서니는 페미니즘을 국제 인권운동으로 발전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이들은 정치적 참여가 절실함을 깨닫고 [[참정권]] 운동에 주력했다. [[서프러제트]]는 성과도 있었지만 70년 동안 '''성 혁명의 에너지를 비효과적으로 낭비해 버린 주범'''이기도 하다고 밀렛은 비판한다. 그 실제 중요성보다 지나치게 중요한 이슈가 되었으며, 참정권을 쟁취하자 페미니즘 운동은 극도의 피로에 지쳐 와해되었고, '다음 단계' 로 넘어가는 게 지나치게 오래 걸려서 운동 전체가 침몰한 것이라고.[* 이 점에 대해서는 파이어스톤 역시 자신의 저서에서 "참정권 운동은 페미니즘의 에너지를 완전히 고갈시켜서 이후 50여 년 동안의 침묵기를 유발시켰다" 고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참정권자들이 대체로 [[부르주아]] [[중산층]] 여성들이었다는 점, 결혼에 관련된 법적 권리는 얻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는 변화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서, 밀렛은 1기 성 혁명의 한계를 아쉬워한다. 하지만 밀렛의 논리에서 분명한 것은, 이때 '''가부장제는 역사상 처음으로 공격받는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이때 특기할 만한 것이 《[[여성의 종속]]》 의 저자인 [[존 스튜어트 밀]]과 《여왕의 화원》(Of Queen's Gardens)의 저자인 존 러스킨(J.Ruskin) 사이의 대립이다. 밀렛은 이것이 '''[[합리주의]] 진영 대 [[기사도]] 진영의 싸움'''이라고 정리한다. 양쪽 모두 양성의 이익과 사회의 공공선을 염려하는 입장이라고 자처하지만, 밀이 여성들의 실제 상황에 기초하여 논변을 전개한 반면에[* 실제로 밀은 《여성의 종속》 을 저술할 때 자신의 아내와 의붓딸에게 직접 하나하나 질문하고 대화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적 자유주의]]의 시조라고 불리는 당대 최대의 지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삶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이 아는 척하기보다는 '''가까운 여성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고충을 알게 된 후, 자신의 [[합리주의]]와 철학적 바탕을 활용하여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통찰한 것이 바로 《여성의 종속》 이다. 어쨌거나 이런 특징으로 인해, 여성계에서는 이 책이 밀 혼자서 쓴 게 아니라 밀 부부의 공저라고 보기도 하는 듯하다.] 러스킨은 "정숙한 귀부인이라는 빅토리아적 낭만" 에 호소한다.[* 물론 밀렛은 러스킨 본인이 차분하고 교육 받은 인물이며 고상함을 추구했다고 말하지만, 그가 전통적이고 통속적인 [[성 역할]]을 맹신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러스킨과 밀의 대립을 밀렛이 정리한 세 가지 포인트에 맞게 표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모바일 환경에서는 열람이 어려울 수 있다.) ||<:><#DDDDDD>'''주제'''||<:><#DDDDDD>'''러스킨의 관점'''||<:><#DDDDDD>'''[[여성의 종속|밀의 관점]]'''|| ||<:><#DDDDDD>'''여성의 본성'''||<#EEEEEE><(> * 여성의 본성은 [[여왕]]과 같은 귀족적 우아함에 있음 * 강인한 남성과 우아한 여성의 상호보완이 필요||<#EEEEEE><(> * 지배계급에게만 지배구조가 [[자연의 섭리]]일 뿐임 * 우리가 본성이라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규범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 ||<:><#DDDDDD>'''여성의 교육'''||<#EEEEEE><(> * 여성의 본분은 남성에게 봉사할 의무를 지는 것으로, 여성이 이 본분을 다하는 데 충분한 수준이면 족함||<#EEEEEE><(> * 모든 영역에서 여성들을 전문적으로 교육시켜서 "세계인의 재능을 2배로" 만들어야 함|| ||<:><#DDDDDD>'''가정의 역할'''||<#EEEEEE><(> * 선량한 여성의 진정한 공간임 * 남편으로부터 전폭적 헌신과 보호를 받는 신성하고 순결한 신전||<#EEEEEE><(> * 폭력적인 예속 시스템의 최후의 보루 * 현실의 부부관계는 마치 [[노예제]] 내지는 군신관계를 연상케 할 정도임|| 그 외에도 밀렛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에서 최초로 [[가부장제]]를 사회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거론한다. 비록 그 자신은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해서 빅토리아적 정조의식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는 한편으로는 가부장제와 그것에 기초한 가족 체계라는 것이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고 혁파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는 의의가 있다는 것. 그 외에도 [[문학]] 분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성 혁명에 호응하여, 《Jude the Obscure》 에서 [[결혼]]이 여성의 삶의 행복이 아니라는 점을 [[허무주의]]적인 시선으로 잘 짚어낸 '''토머스 하디'''(T.Hardy), 《The Egoist》 에서 [[기사도]]란 결국 남성들만의 이기적인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음을 통찰하여 [[희극]]적으로 풍자해 낸 '''조지 메레디스'''(G.Meredith), 《Villette》 에서 가부장제가 여성의 정신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여성 작가가 여성적 감수성으로 드러낸 바 있는 '''샬롯 브론테'''(C.Bronte), 《Salome》 에서 모호한 [[탐미주의]]적 분위기 속에서도 여성의 관능성과 섹슈얼리티를 옹호한 '''[[오스카 와일드]]'''(O.Wilde)가 거론된다. 이들은 저마다 가부장제에 의문을 품었지만, 한편으로는 제각기 그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성 혁명은 [[1930년대]] 이후로 어떻게 가라앉아 버린 것일까? 저자는 먼저 [[정책]]적인 실패를 들고 있다. 한편에서는 '''[[나치 독일]]'''이 전면적으로 [[안티페미니즘]]적인 노선과 유화 노선을 병행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소련]]'''이 엥겔스의 뜻을 따라서 가부장제 철폐를 위해 애썼지만, 결과적으로 [[1940년대]] 이후로는 그들도 서구권의 가부장제와 다를 바가 없어졌다. 특히 소련의 실패에 대해, 밀렛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서 설명을 시도한다. '''1)''' 모두가 입으로는 가족제도의 철폐를 부르짖었지만, 이를 실천하여 섹슈얼리티의 자유를 얻을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다. '''2)''' 소련 여성들의 대다수는 [[문맹]]이었으며, 가족제도의 철폐라는 명분 속에서 자신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남성들에게 순종했다. '''3)''' 서구와의 경쟁 속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은 산업발달, 군비증강 등의 [[국가주의]]적인 의제를 강조했고,[* 이때 국제 공산주의 역시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기 위해' 가족을 구해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강한 국가와 많은 민족을 만들지 못하면 절멸당할 것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 결과 다시금 '국가를 대신하는 아버지' 의 [[권위]]와 여성의 임신 및 출산의 역할이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줄여 말하면, '''가부장제와 그 가족구조는 "[[연합국|두려운]] [[제1세계|적]]" 과 맞서 싸우려는 과정에서 다시금 그 힘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정책]]적이고 국제적인 문제 다음으로, 저자는 [[이데올로기]]적이고 사상적인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안티페미니즘]]적인 사상 첫째는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다. 저자는 반혁명기에 가부장제에 설득력을 부여했던 가장 큰 학술적 동력이 바로 정신분석학이라고 지적하면서, 마침내 통속적 수준에서는 거대한 반혁명적 조류가 초래되었다고 비판한다. 그 중에서도 프로이트가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논리적으로 여성을 부정적으로 정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남근 선망'''(penis envy)의 이론체계, 여성이 처한 조건을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호도하는 '''생물학적 본질주의''', 여성들이 수동적이고 피학적이며 자기애적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성에 대한 설명'''이라고 한다. 특히 마리 보나파르트(M.Bonaparte)와 헬렌 도이치(H.Deutsch) 같은 후학들은 "남성이 여성을 가학적으로 대하는 것, 여성이 남성에게 학대받는 것은 심리성적으로 건강한 것" 이라는 기괴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으며(…),[* 밀렛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유명한 발달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E.Erikson) 역시 "여성들은 [[월경]]을 할 때 상실감을 느낀다" 고 주장했으며, 이 때문에 저자 밀렛에게 "여성은 평생 월경을 450번 정도 하는데, 그럼 여성들이 느낄 상실감은 어마어마하겠네" 라며 까이기도 했다.] [[1947년]]에 출판된 《Modern Women, Lost Sex》 라는 [[정신분석학]]적인 [[자기개발서]]는 아예 대놓고 "페미니즘은 질병, 콤플렉스, 대중 선동물, 가정파괴자" 라며 악평을 내리면서 여성들에게 "발기된 페니스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종속되어야 한다" 고 처방(?)을 내리기도 했다고. 저자가 지적하는 둘째 사상적 이유는 바로 '''[[기능론|기능주의]]'''(functionalism)이다. 실제로 이는 50~60년대 [[사회과학]] 영역들을 휩쓸었던 사상적 흐름으로, 특히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라는 점을 많이 어필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들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밀렛은 그것이 가부장제와 같은 사회적 현상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에만 관심을 가질 뿐, '''"언제부터, 어째서 작동하기 시작했는가" 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게다가 무엇이 "기능적이다" 라는 진술은, 기능주의자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결국 그 자체로 불가피하게 '''가치개입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도 비판한다.[* 예컨대 저자는 본서에서 두 건의 [[사회과학]] [[논문]]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Barry, Bacon, & Child(1957)의 논문에 대해 저자는 해당 연구자들이 과장된 암호 같은 표현들을 통하여 중립적이고 사심 없는 면모를 보이려 하며, 기사도 정신이나 사회적 구조에 호소하지 않으면서도, 여성들의 고통을 본인들의 책임으로 돌리게 한다고 비판한다. 다음으로, Brim(1958)의 논문의 경우 저자는 남성성의 특징에는 인간의 모든 덕목을 부여한 반면 여성성의 특징에는 인간의 모든 악행을 부여했다고 비판한다.] 더불어, 기능주의는 결국 '''현존하는 체계의 안정을 추구'''하며, "잘 기능하고 있다면, 그것은 필연적이고, 따라서 자연스럽다" 는 논리로 현재 상태(status quo)를 옹호한다는 문제도 있다. 이래서야, 기존에 확립된 체계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적응 못 한 개인이 문제라는 결론이 얻어진다는 것. 두 사상적 비판 모두 여성운동의 역사에서는 생소한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시몬 드 보부아르]] 역시 이미 [[정신분석학]]으로는 "만들어지는 여성", 즉 여성성(femininity)을 설명할 수 없다고 비판한 적이 있고, 베티 프리댄(B.Friedan) 역시 《[[여성의 신비]]》 에서 마거릿 미드(M.Mead)와 같은 성공한 여성 사회과학자들이 자꾸 "여성들이 제 '기능' 을 다할 수 있는 곳은 부엌입니다" 라고 떠들어대는 통에 [[성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계가 실제로 두 사상적 조류에 큰 빚을 지고 있기는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까지 사회과학자들이 전부 손가락만 빨고 있던 것은 아닌지라(…) 정신분석학을 이리저리 뜯어고친다거나 기능주의의 지향점만을 받아들이고 사회적 변화(social change)를 촉진할 수 있는 연구를 추구하는 등의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두 사상들은 여성 운동에 대해 직접적으로 거부하거나 대외적으로 중립을 표방하는 것처럼 굉장히 잘 대조되는 입장을 취했으므로, 이들이 시대가 변하면서 제각기 어떻게 비판받으며 변화되어 왔는지를 따로 검토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